카테고리 없음

白日夢, 長恨夢

젤앤 2024. 4. 5. 23:47

박병찬은 꿈을 꾸었다. 자신이 21세 였을 때의 꿈. 10대 였을 때 느끼지 못했던 청춘의 한 시절. 화양연화 그 자체의 인생을 즐겼을 때의 꿈을 꿨다. 박병찬은 기상호와 농구를 하고 있었고, 기상호의 뒤에는 준수와 나머지 아이들이 있었다. 기상호를 빤히 쳐다보고 있을 즈음, 박병찬의 어깨에는 누군가의 손이 올라왔다. 뒤를 돌아보니 자신의 뒤에는 믿을만한 초원이. 태영이는 물론 우리 조형고 선출 멤버들이 모두 있었다. 박병찬은 미소를 지었다. 기상호가 잘 하더라도, 우리 팀도 질 수 없으니 가장 재미있고 신나는 게임을 하기 위해.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우리의 경기는 누가 보러 왔는지 문득 궁금해졌기 때문에. 고개를 돌리자마자 박병찬은 보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白日夢

백일몽 :: 대낮에 꿈을 꾼다는 뜻으로, 실현될 수 없는 헛된 공상을 이르는 말.

 

 

 

눈부시게 밝게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박병찬은 꿈에서 깨었다.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정리 하고 뻑뻑한 눈을 풀기 위해 안약을 넣은 후 방에서 나왔다. 거실에는 최종수가 있었고, 최종수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 박병찬의 코에 들어갔다.

" 올~ 종수, 뭐 만들고 있어? "

박병찬은 최종수에게 말을 걸며, 촤종수 답지 않게 잠으로 인해 뜬 머리카락을 꾹 눌러주며 질문을 했다. 최종수는그런 박병찬이 짜증났는지 요리하던 반대손으로 박병찬을 밀며 대답했다.

" 네가 어제 파스타 먹고싶다며. "

박병찬은 감동했다. 그 최종수가 자신이 먹고싶다고 대충 흘린 말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음식을 해주고 있다니. 그래도... 아침에 파스타는 좀 무거운거 아닌가? 하며 시간을 보았을 땐 이미 2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 뭐야. 아침 아니네. 파스타가 다 되었는지 식탁으로 그릇을 가져가는 최종수 뒤를 쫄쫄 따라가는 박병찬은 문득 경기가 별로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최종수에게 말을 붙였다.

 

" 아, 그러고보니까 경기 조금 밖에 안남았지? 그 전에 수면 패턴 돌려놔야 할텐데~ "

" 너 저번 달에 해외 경기 갔다온 뒤로 계속 그 상태잖아. 경기 고장 일주일 남았는데 가능하겠어? "

" 물론 가능. 우리 종수, 또 악플 보느라 밤 새면 안된다? "

 

박병찬의 장난스러운 말에 최종수는 박병찬의 등을 세게 때린 후 파스타를 빨리 먹으라고 재촉했다. 최종수의 말대로 경기는 정확이 일주일이 남았다. 여러 일들이 겹쳐서 최종수와 함께 경기를 뛰지 못하다가, 드디어 거의 처음으로 최종수와 경기를 뛸 수 있게된 박병찬은 신났다.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한다니, 가장 큰 행복 아닌가? 그래도 운동은 운동. 경기에 방해되지 않게 사모의 마음은 잠시 넣어두고, 누구보다 열중히 임할 것이라 다짐 한 후 박병찬은 식사를 마쳤다. 그러고는 평소와 같이 최종수에게 밖으로 나가자 하였고, 그들의 원온원은 또 시작되었다.

 

컨디션 관리도 하면서 몸에 피로가 쌓이지 않게 하며, 다친 곳이 전혀 없이 일주일을 보내라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부상을 입는 것은 둘째 치고, 사람이 살다보면 스트레스로 인해 컨디션이 무너질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특히 그런 것에 예민한 유리멘탈 최종수는 더욱 심했고. 그러기에 원온원은 5시간 밖에(...) 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다. 3시에 집에서 나갔는데, 땀과 함께 돌아왔을 땐 8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박병찬은 땀을 닦은 뒤 최종수와 함께 씻으러 들어갔다. 원래의 수면시간보다 5시간은 일찍 누운 두 사람은 잠에 들 생각은 하지 않고 노가리나 까고 있었다.

 

" 이번 경기, 이길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다들 기합을 다 하고 있을테니깐. "

" 그런거 생각하지 말고 자라니까? 열심히 하면 이길 수 있어. "

" 이 꼬맹이, 생각하는 건 예전이랑 똑같네. "

하며 박병찬은 최종수를 꼬옥 안고 잡에 들었다. 죽부인 삼아. 최종수는 자신의 등으로 모두 오는 박병찬의 체중을 버텨가며 잠에 들어야했다.

 

 

 

박병찬은 또다시 꿈을 꾸었다. 자신이 중학교에 다닐 시절의 꿈.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만 걷던 그가 서늘한 그늘 속에 버려졌을 때의 꿈. 꿈에서의 박병찬은 병실의 침대 위에 앉아 자신의 오른쪽 무릎을 끌어안은채로 창문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박병찬은 잘 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엔 적어도 그랬다. 살면서 울어본 적은 어릴 때 부모님이 케잌을 들고오시다 엎어서 서러워서 운 적 밖에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중학생의 박병찬은 달랐다. 샛병아리 같던 그는 털이 다 뽑혀버린 초라한 동물처럼 작디 작았고,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을 끌어안고는 눈물만을 흘렸다. 그 시절의 박병찬은 항상 누워 유튜브를 보고, 부모님이 한가득 챙겨오신 간식거리들을 먹고, 재활치료를 한 것이 다였다. 유튜브는 당연하게도 농구를 보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던 농구로 인해 무너졌음에도 아직까지 사랑한 마음은 남아있었으리. 그 때의 박병찬은 주로 유튜브로 드웨인 웨이드 선수의 시합을 보았다. 박병찬은 드웨인 웨이드의 돌파를 아주 좋아했다. 돌파하는 그의 옆에 선다면 바람이 쌩, 하고 부는 것을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꿈에서의 박병찬은 달랐다. 가로로 잡고 있는 스마트폰에선 드웨인 웨이드 대신 최종수의 시합이 빛나고 있었다. 그를 찾아본 건 박병찬 자신도 모를 것이다. 왠지모르게 끌렸다고 할까, 그 이유가 다 일것이다. 겉으로 보아도 잘생겨보이는 외모. 어머니가 미스코리아 아니랄까봐 엄청나게 빛나는 외모였다. 물론 그 이유는 둘째였고, 박병찬이 본 최종수는 이미 진 것이 확실한 경기임에도 열심히 임하고 있는 행동이었다. 누가봐도 질 경기인데 왜 저렇게 열심히 하는거람... 

 

박병찬은 그 이유를 알고있음에도 최대한 무시했다. 더이상 생각하면 농구에 열심히였던 자신이 계속 생각나니깐.

 

 

 

 

하루, 이틀.

박병찬과 최종수의 경기는 더욱 가까워졌다. 잠에 들어서 여러 꿈을 꾸고 나니 시간은 금방 갔다. 짧게도 느껴지던 일주일은 더욱 짧은 사흘흘이 되었고, 더욱 짧은 하루가 되었다.

 

박병찬과 최종수는 같은 색의 유니폼을 입은채 코트 위에 섰다. 그들의 등 번호는 고등학교 시절과 같은 23과 21로. 그 등번호를 등에 이고 시합을 시작했다.

 

 

 

삐익——! 시작 휘슬이 울렸고, 선공은 상대편이었다. 상대편의 에이스가 이쪽으로 왔고, 상대편은 완벽한 호흡으로 공을 패스하며 코트위를 지배하였다. 박병찬은 두명, 최종수는 한명을 블로킹하며 열심히 시합을 이어나갔다. 상대의 실수로 인해 공을 놓쳐 우리쪽으로 공격권이 넘어오게 되었고, 박병찬은 힘을 쥐어 짜내 공을 라켓에 넣었다. 3점을 얻었다. 힘겹게 얻어 기뻐하기도 잠시, 시합은 끝나지 않았으니 계속 이어나갔다. 

 

3점, 2점, 1점, 1점. 

전반이 끝났고, 박병찬의 팀은 20점 차이로 이겨가고 있었다. 박병찬과 최종수는 서로를 믿으며 함께 하이파이브를 친 후, 더욱 열심히 하겠다 생각한 후 다시 코트로 들어갔다. 상대편이 무슨 계획인지, 갑자기 왜 이렇게 잘하는진 모르겠지만 두 팀의 점수 격차는 더욱 가까워져갔고, 20점 차이가 나던 점수는 금새 3점 차이가 되었다. 최종수는 고등학교시절, 만나는 상대팀마다 심리전을 걸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반복했다. 오른쪽으로 갔다가 점프슛. 막아봐. 그런 최종수를 보며 박병찬은 생각했다. 아직도 애새끼네. 그런 생각도 잠시, 최종수의 심리전은 보란 듯 성공했다. 상대팀은 당황해 오른쪽으로 가지도, 왼쪽으로 가지도 못한 채 우물쭈물 하고 있을 떄 최종수는 돌파하였고, 라켓에 골을 넣었다. 1점이긴 하지만 더욱 격차가 벌어져 좋은 소식이었다. 시합이 끝나기까지 4분조채 남지 않았고, 이 시합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공이 박병찬에게 왔고, 박병찬은 달렸다.

 

 

' 병찬이 너한테는 국가대표 가드가 되는 미래가 보여. '

' 내가 가르쳤던 녀석들 중에 단연 최고다. '

' 다시는 포기하지 마라. 너는 내 농구인생 최대의 걸작이 될테니까. '

 

박병찬이 조형고에 다닐 시절, 질리도록 들었던 이규후 감독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고, 박병찬은 그에 보답하듯 더욱 열심히 뛰었다.

 

휘이잉——!

' 바람이 쏴악하고 불더라니까. '

 

 

 

 

 

——!!!박병찬은 라켓에 공을 넣었다. 무려 2점. 박병찬이 라켓에 공을 넣은지 3초 넘게 안되었을 즈음에 시합이 끝나는 소리가 들렸고, 박병찬과 최종수의 팀이 이겼다.

 

 

*

 

이겼다, 드디어 이겼다. 우리팀이 이겼다. 열심히 노력만 하면 다 된다고. 고등학교 시절도 열심히 노력해서 내가 다 이겨왔다고. 이번에도 열심히 해서 이긴거지. 거봐, 박병찬. 내 말이 맞지?

 

 

....

 

최종수가 기쁜 마음을 발산하며 뒤돌아본 코트에는 박병찬이 서있지 않았다. 박병찬이 갑자기 코트를 나갔나? 그건 아니었다. 박병찬은 코트에 있었다. 단지... 무릎을 감싸고 누워있을 뿐.

 

 

 

 

 

 

 

" 십자인대 파열입니다. 저번에도 파열된 적이 있으시죠? 이번엔... 아무리 재활을 하더라도 다시 뛰진 못할겁니다. "

 

 

최종수는 눈 앞이 어두워져갔다. 지금 이 상황을 그의 머리로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도리였다. 최종수는 단지, 힘차게 달려가는 박병찬을 가까이서 바라봤고, 자신의 팀이 이겼다는 뜻의 휘슬을 듣고는 자신의 애인을 돌아봤을 뿐이었으니까. 박병찬은 101실에 누워있었고,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이불만을 덮고 있었다. 최종수는 뱅뱅 도는 풍경을 뒤로 한 채 박병찬의 부모에게 전화했고, 부모 말대로 박병찬의 수술이 들어갈 때 잠시 보호자의 역할을 하였다.

 

갑작스레 중단 된 모든 경기. 최종수는 어찌저찌 해 경기를 계속 찍고있던 카메라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이유는 이랬다. 덩크를 한 박병찬의 옆에서 상대팀 중 가장 덩치가 큰 사람이 아주 세게 박병찬을 밀어 넘어트렸던것이다. 갑작스러운 충돌과 추락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바닥에 박병찬의 무릎이 부딪혔던 것이고. 보통 사람이라면 무릎이 까질 뿐, 멀쩡했을 수도 있지만 박병찬은 이미 한 번 다쳤던 사람이었다. 유리처럼 다시 부숴지는 건 시간문제였겠지.

 

 

최종수는 방금까지 엔돌핀이 돌아 흥분했고, 즐거웠던 감정은 다 사라지고 혼란과 패닉만이 남았다. 최종수가 이런 기분이라면 박병찬은 어떻겠는가? 최종수는 여러 뜻이 담긴 한숨을 몇 번 쉰채로 박병찬의 병실에 들어갔다.

 

"야, 박병찬. "

 

박병찬은 최종수의 부름에도 대답 없이 창문만을 쳐다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 야, 박병찬! "

" 아, 종수구나. 미안. 멍때리고 있어서 못 들었네. "

 

박병찬은 최종수의 소리침에 드디어 돌아보았다. 최종수의 생각과 달리 박병찬은 무척이나 멀쩡해보였다. 그냥 무릎이 까진 사람처럼. 전혀 무릎이 파열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종수는 알았다.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최종수는 짜증났다. 나는 얘 애인인데도 왜 말을 해주지 않는거지? 최종수는 바로 물어봤다.

 

" 야, 박병찬.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해줘야 내가 듣던 말던 할 거 아냐. "

" 하하, 종수는 역시 애새끼네. 이 형아는 아무 생각도 안하고 있다~ "

" 아니잖아, 너. 하고 싶은 말 있잖아. "

 

빨리 말해보라고... 최종수는 눈물을 흘렸다.

 

" 야아, 종수야. 네가 왜우냐. 울어야될 건 난데. "

박병찬은 최종수를 꼭 안아주었다. 침대에 앉은 채로. 

 

10분 정도 채 지나고 최종수는 눈물을 멈추고 땡땡 부은 눈으로 성질을 내며 사과를 깎아주고 있었다.

 

" 빨리 말하라고, 이새끼야. "

" 진짜 아무 생각도 안한다니까? 이 녀석, 형아를 너무 못 믿는거 아니냐? 그래도, 마지막 경기는 이겨서 다행이다. 그치 않냐? "

 

박병찬의 말 그대로 박병찬은 별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계속 꿈꿔왔던 날이 오늘 이란것임을 수긍하고 별 말 하지 않았다. 국대라도 되서 천만 다행이네. 마지막에 다쳐서 결과는 확실히 알아서 다행이네, 같은 태연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별로 미련이 없었다. 이 무릎으로 경기를 뛰면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으니. 하지만 최종수는 짜증났다. 마지막 골을 내가 넣었으면... 그냥 우리팀이 졌더라면. 최종수는 애인보다 경기가 중요한 나쁜 이는 아니었기에.

 

 

 

그 후, 박병찬은 재활을 시작했다. 대충대충 했지만, 최종수의 온갓 구박과 잔소리에 어쩔 수 없이 중학교 시절처럼 열심히 하였다. 이래도 농구는 절대 다시 못할거란 말이지. 생각보다 박병찬은 아무렇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과는 다르게.

 

' 왜지? 상황은 그때랑 비슷할텐데. 마지막에 덩크를 넣어서 그런가? '

답은 아주 간단했다.

 

그의 곁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혼자였던 그때와는 다르게 모두가 박병찬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적으로 만났던 후배도, 감독님도, 초원이도, 태영이도,

 

최종수도.

 

모두가 박병찬의 옆에 있었기에 박병찬은 무섭지 않았다. 다시는 농구를 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는 조금 아쉬웠지만, 결국 이럴 걸 알고 있었으니 계속 미련을 남기지 않기로 했다. 박병찬이 그때에 계속 머물러 백일몽을 꾼다면, 최종수도 똑같이 백일몽을 꿀 것이에.

그래서 박병찬은 최종수를 위해 그 가시 돋힌 뿌리를 벗어나고, 공상만이 가득한 백일몽에서 깨어나기로 다짐했다. 박병찬에 대한 장한몽을 꾸고 있는 최종수와 함께 더욱 앞으로 나아갔다.

 

 

 

야, 이 자식아. 최종수. 이상하지 않냐? 몇년 전에 다쳤을 땐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는데, 이젠 아니다? 네가 뭐라고 나를 이렇게 바꿔놓냐. 물론 무릎은 아프지. 비가 올때도 시큰거릴거야. 동네 코트에서 농구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솓구치겠지. 근데, 그게 두렵지 않다? 오히려 농구를 하지 않는 내 인생은 어떨지 두근거릴정도야. 역시 이상해진 걸까?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진짜 이상한거겠지. 농구하는 애들 보면서 부러워하는 건 좋은데, 질투난다고 공 뺏기만 해봐라. 내 집에서 쫒아낼 거니깐. 내가 네 감정을 알 수 있겠냐. 난 너 아무것도 모른다고. 근데 이거 하나는 말 할 수 있겠네. 네 옆에 내가 있을 거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악몽도 꾸지마. 악몽 꾸는 거 보면 머리 쳐서 바로 깨울거다.

 

長恨夢

장한몽 :: 깊이 사무쳐 잊을 수 없는 마음